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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암흑기를 주도한 비밀경찰 '게슈타포'
22-11-11 02:20

https://www.youtube.com/watch?v=is1Mj0Qr9ao&list=PL6vFoXcqXtqENdPZf0MUfUoU65NacqGca&index=2&ab_channel=RiseofNationsTV






“나는 과거에도 나치였고 지금도 나치다.

나는 독일에서 태어났고 독일을 위해 싸웠고, 독일인으로 죽을 것이다.”

- 리옹의 게슈타포 고문기술자 '클라우스 바르비'






image.png 독일의 암흑기를 주도한 비밀경찰 \'게슈타포\'

( 1987년, 프랑스 법정에 출석한 '클라우스 바르비' )















image.png 독일의 암흑기를 주도한 비밀경찰 \'게슈타포\'

( 영화 '조조 래빗' 에서 묘사한 게슈타포 )



게슈타포

풀어쓰면 '비밀국가경찰' 이라는 뜻으로, 이들은 새로 들어선 나치의 정권에 위반되는

반체제인사, 즉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와 같은 반나치주의자들을 검거하는 것을 비롯하여

노조탄압, 유대인색출, 치안유지 등 독일 전국 곳곳에서 치밀하게 활동했다

운좋게 자신이 유대인이나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나치에 반대하는 말을 했다간

즉시 주변사람들의 밀고로 게슈타포에게 심문을 받아야만 했고

그 대상은 남자, 여자,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다양했다









“ 게슈타포는 국가 행정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얻었다. ”

. . .

" 특히 게슈타포의 권위는 더 이상 '국가 내부' 가 아니라 '국가 외부' 로 퍼져나갔다. "

- 『게슈타포: 제3제국의 권력과 공포』, 2014, 옥스포드 대학 출간












1. 탄생








image.png 독일의 암흑기를 주도한 비밀경찰 \'게슈타포\'

( 악수하는 '히믈러'와 '괴링'. 이들은 나치 독일의 악독한 전범들이었다 )



위와 같은 게슈타포의 '치안유지' 활동에는 나치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이루어졌다

1933년, 나치당이 불의의 날치기 통과로 제1정당에 집권하자마자 프로이센의 내무장관이던

헤르만 괴링은 프로이센 경찰에서 정치, 첩보활동 전담반을 분리하여

여기에 수천명의 나치당 당원을 충원하였고,

또한 조직을 게슈타포로 개편하여 직접 지휘하였다

이 시기 그 악명높은 SS 나치 친위대의 책임자인 하인리히 힘러

바이에른 주를 비롯한 다른 주의 경찰들을 위와 유사하게 재조직하였다

이후 힘러가 게슈타포 장관으로 취임한 후부터는

SS에 속한 보안경찰 SD에 흡수되어 제3제국의 비밀경찰기구로 발전하였다

독일에 본격적으로 암운이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image.png 독일의 암흑기를 주도한 비밀경찰 \'게슈타포\'

( 앞줄 가운데, 장갑을 쥔 사람이 '프란츠 요제프 후버'. 그는 오스트리아 빈의 게슈타포 수장이었다 )



게슈타포의 임무는 철저히 나치당을 위해서만 이루어졌다

나치당의 내노라하는 권력자들을 등에 업고 초월적인 권력을 손에 쥔 이들은

나치당의 사상과 체제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었고, 그것은 상당히 폭력적이기 그지없었다

게슈타포는 나치돌격대인 SA와 함께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유대인을 포함한 반체제인사들을 끄집어냈고

그들을 수용소에 보내거나 도중 몇몇은 즉시 살해했다

밀고와 고발이 난무했고 사회는 극도로 공포스러우며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나치당에 반(反)하는 인물들을 숨겨주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고 누가 다음 차례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으며

그 누구도 함부로 나치당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독일인들은 독일 인구의 1%에도 못 미치는 50만 유대인의 운명에 신경을 끄게 되었고

당장의 안위에 만족해하며 살아남은 것에 안도했다

하지만 당시 난폭한 억압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저항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 게슈타포는 어디에나 있다. "

- SS 나치 친위대 중장 '하인리히 뮐러'












2. 절정











image.png 독일의 암흑기를 주도한 비밀경찰 \'게슈타포\'

( 게슈타포 휘하의 병사가 유대인의 머리를 강제로 깎고 있다 )


게슈타포의 인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나치 독일의 점령지에까지 퍼져나가며 그 수는 총 4만명에 이르렀다

전쟁이 점차 추축국에게 불리하게 진행되던 1943년

독일내에서 나치 독일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던 백장미단을 비롯한 다른 여러 저항단체들의 구성원 수천명이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었고 그들에 의해 지독한 심문과 고문을 받았다

며칠동안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무수한 구타와 욕설, 협박 등이 자행되었다

그들은 이미 결과가 정해진 강압적인 재판을 거쳐 단두대로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보내졌다

운좋게 살아남은 몇몇 이들은 도피하거나 은신했고 나머지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이어나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Fgpbq2hd0yY&ab_channel=CriticalPast

( 골수 나치였던 '롤란트 프라이슬러' 판사가 반체제인사에 대한 처분을 담당했던 기록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ZJXLZdnhCI&ab_channel=mrgreen1066

( 위 영상은 '소피 숄의 마지막날들(2006)' 이란 영화로 재현되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UGXWvPa1D0U&ab_channel=BritishPath%C3%A9

( 1944년 프랑스가 해방된 이후 공개된 게슈타포의 고문실과 처형장 )





https://www.youtube.com/watch?v=0K72H3VaF6A&ab_channel=YadVashem

( 살아남은 유대인 생존자의 증언 )











3. 몰락









image.png 독일의 암흑기를 주도한 비밀경찰 \'게슈타포\'

( 게슈타포 여성 대원이 피난민 수용소에서 난민 행세를 하다 붙잡혔다. 정면에서 좌측 여성 )


이와같이 무수한 악행들로 연합군에게 단단히 찍힌 게슈타포는 절대 곱게 죽지 못했다

전쟁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찬 연합군 병사들은 '해골' 이 부착되거나

'SS' 를 묘사한 오버로크가 새겨진 제복을 입은 이는

포로취급조차 하지 않았고 재판없이 즉결처형을 실시했으며

유대인 수용소에 집어넣어 유대인들에게 얻어맞아 죽게 했다

보복이 두려운 이들은 자살을 선택했다







상당한 수의 게슈타포 대원들은 재판이나 보복을 피해 남미를 포함한 제3세계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신분을 위장하고 살거나 여러 독재자들에게 빌붙어 고문기술자로 살아갔다

하지만 전직 SS 대원이었음에도 그들은 훗날 동독, 서독에서 쉽게 일자리를 얻었고

개중엔 정부의 고위직까지 겸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는 당시 유럽에서 나치에 대한 청산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의 '반체제인사에 대한 수행방식' 은 종전 후에도 여러 나라에서 모방하였으며

그 잔재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image.png 독일의 암흑기를 주도한 비밀경찰 \'게슈타포\'

( SS 나치 친위대 대장 '하인리히 힘러'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